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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things are not so little

돌무덤

2017.02.22 06:52

암사동에 살 때 가끔 선사 유적지로 산책을 하곤 했다. 소박한 박물관 구석에는 선사시대 돌무덤에 대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도 있을까, 정교하거나 감동적이거나 그런 그림은 아니었지만... 가끔 그 돌무덤을 생각한다.

어떤 돌무덤에는 바다를 바라보게 시신을 뉘우고 묻어준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삶이 비교와 모방을 통해 살아남기를 택하게 되는 순환의 고리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돌무덤을 만들던 그 때에,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 죽음에 대한 따뜻한 단서를 주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내가 단절이라 느끼는,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그 곳이 어쩌면 당신의 믿음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마지막 배려로 평생 사랑했던 이 세상의 작은 한 조각을, 그것이 비록 바다의 먼 발치 모습이라 할지라도 조금은 간직한 채 떠나갈 수 있는 곳일 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따뜻한 믿음에 나도 공감합니다...' 라고. 어떤... 위안으로서의 단서. 나약하고 불완전한 마음을 위한 믿음, 그 믿음에 대한 공감과 모방.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치들로부터 조급해진 마음일 때, 불안한 시선이 닿은 곳에서 위로라 할 만한 것을 발견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이해할 수 없었던 의문에 대한 진리에 가까운 대답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단지 내 마음에 공감을 일으킨 누군가의 한가지 방식, 수많은 이해와 수용의 방법들 중에서 내 마음에 닿은 하나. 인간이 인간에게 전하는 해답과 위안. 가장 쉽고 마술처럼 아슬아슬한, 그렇지만 일단 가슴 속에 들어온다면 오직 하나의 진리로 살아남을 ... 사람들 사이로 이어지는 믿음 같은 것.

어느 순간 이후에 나는 그런 따뜻한 믿음 같은 것을 놓친 것 같다. 그런 것이 있었는 지도, 이제라도 가져야 하는 것인 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오래된 물건이나 이야기를 통해 생각하는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믿음들은 동시대의 사람들이 주는 것과는 또 다른 위안을 준다. 그들이 주고 받다가 놓아둔 채 떠나가버린 위안의 흔적들, 조금 나른하게 바래버린 이야기 속의 위안, 지금 진행되는 삶의 속도감에서 조금 빗겨난.. 쓰고 단 뜨거움이 사그라든 채로인... 믿음의 기록들. 그들은, ' 언젠가는 너무 달았던 것도, 눈물나게 썼던 것도 다 바래버리고 말겠구나.' 혼자 중얼거리도록 내버려 둔다.
'좋아질거야'라고 말하지 않는 것들의 위안.


 

2017.2.22
재원이가 보내준 아헨의 사진. 오늘 재원인 한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만날 엄마 얘기를 하는 재원이에게 나도 우리 엄마의 오늘 얘기를 해 주었다.
나와 정말 다르다고 느끼는 친구지만 엄마 얘기를 나눌때 만큼은 이제 불혹을 넘긴 누군가의 '딸'로서 내 마음 어느 구석의 어느어느 감정과 닮았을 것만 같은 뭔가를 더듬곤 한다.
우리도 어느새 서로의 엄마 얘기를 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 이십대에 서로의 꿈 얘기만으로도 시간이 짧았고, 십대의 내가 늘 반항의 대상으로서만 엄마 얘기를 했던 걸 생각하면... 이젠 정말 완전히 다른 시대의 인물들처럼 느껴진다. 그때의 엄마도, 그때의 나도 없다. ...


아헨의 저 작은 성당 울타리 밖에 서서 우리는 각자의 기도를 올렸었다. 그것도 벌써 2년 전.
우리 마음이 느려질 수록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건 ... 그게 무엇이든간에 무섭게 빨라지고 있고, ... 가끔 뭔가를 이 길에 잔뜩 떨군지도 모른 채 달리고 있는 것 같을 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