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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things are not so little

프라하, 흑백 사진들

 





 





 





 





 





 





 





 





 





 





 





 





 





 





 





 





 





 





 





 





 





 





 





 





 





 





 





 





 





 





 





 





 





 





 





 





 





 

 





 





 





 





 





골목을 헤매는 꿈이 좋다. 두근거릴 만큼 낯설면서도 어딘가 유년의 기억에 기인해서인지 오래고 익숙한 느낌이 드는 골목들.
꿈에서 깨어난 아침의 그 순간에 남아 있는,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한 머리와 마음의 기운이 아까워서 일어나기 싫어질 정도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도 꾸준히 꾸던 꿈인데 프라하에서는 한 번도 꾸지 않았다.

프라하에서의 첫 달,
목도리에 코를 묻고 캐롤을 들으며 꽁꽁 언 몸으로 구시가에 도착하면 아직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부터 눈에 들어오고,
까페를 찾아 귀가 찡할 정도로 단 케잌과 커피를 마셔 주지 않으면 몸이 쉬 풀리지 않는 한겨울이었다. 가끔 고대하던 눈이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몸을 녹이고 그 기운으로 블타바 강변을 서성이며 해 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게 1월의 산책이었다.
겨울의 '혼자 걷기'는 어디서나 힘들다.

바츨라프로 이사한 2월의 산책은 다시금 열심히 골목을 쑤시고 다니는 개 모드로 돌아왔다. 서울에서처럼.
예년보다 따뜻하다는 프라하의 골목을 이른 봄기운을 느끼며 홀로 서성일 때는 그 '골목 꿈'이 떠올라 좋았다.
골목은 이쁜 건물과 갖가지 모양의 창으로 가득했고, 빛이 닿을 때마다, 반사될 때마다 건물은 더 아름다워 졌다.
특히, 저녁무렵의 지는 해를 받는 창은 그 순간에 정말 완전해 지더라.
그 순간을 보기 위해 산책을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 프라하를 떠올릴 때 제일 그리울 것은 골목골목 쫓아 다니며 봤던 이 빛들이겠지.
그 중에서도 특히 저녁의 해가 마지막으로 떨구던 빛,
자꾸만 서쪽으로 뚫린 골목만을 찾아가서 그 속을 실눈을 뜨고 걷게 만들었던 눈부신 바닐라빛 해.
그리고 그 해가 어루만졌던 그 곳의 아름다운 장면들.

기억 속의 프라하가 조금씩 더 흐릿해 지고 그리워지면, 내 '골목 꿈'에도 조금은 닮고 조금은 변형된 그 곳의 모습이 나타나겠지.
꿈 속의 골목들은 적당히 어둡고, 어쩌면 어두워서 더 아늑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그 꿈이 조금쯤은 더 화사하거나 포근하라고, 볕이 다정했던 사진들을 흑백으로 모아 본다.


+
혼자 산책할 때 쓰는 카메라가 색을 많이 날리는 편이라 사진에서 색을 빼고 흑백 그림 속에서 빛을 찾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재밌었다.
사진을 찍는 것만큼 보정해서 간직하거나 그리려고 모아두는 걸 좋아한다. 게을러서 많이 그리진 않지만 욕심껏 따로 모아 두는 것만으로 든든해지는 기분.

본다는 것, 기록한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 무의식까지 깊이 각인된다는 것.
아무리 좋은 카메라, 좋은 그림 솜씨, 좋은 머리라 해도 그 과정에서 무수하게 많은 유실과 왜곡과 이입의 여지가 있다는 게 좋다.
사진을 찍는 것도, 그 사진을 보정하거나 따라 그려서 내가 좋아하는 색을 마구 칠해보는 것도,
오랜 후에 꿈에 나타날 정도로 깊이 각인된 장면을 단지 왜곡된 기억에 의존해 그려내는 것도 다 그 여지를 즐기는 일이다.

단순히 빛으로 보내져서 색이 조금 변한 채로 기록되고, 아예 색을 잊은 채로 마음에 남고 그 잔상이 꿈 속에서 흑백의 홀로그램처럼 재현되거나 하는 그런 과정들을.
잡히지 않는 영혼처럼, 일생의 긴 시간에 걸쳐 변하고 퇴색하고 남겨지고 기억되는 그런 빛의 여정들, 그런 것들을 조금 더 즐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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