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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things are not so little

Autumn 2018

좋은 계절. 어느때보다 풍성한 볕. 

 

둘째 언니가 지난 겨울 한국 다녀온 후에 추천해준 쇼스타코비치의 Lyric Waltz.. 그러나 내가 치면 다 연습곡. :-|

피아노 곡을 외우다 보면 뇌가 반복을 통해 기억을 강화하는 과정이 보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다. 아침, 점심, 저녁이 다르고, 예기치 않은 시점에 퇴보가 있기도 하고.. 한참 안 치다 쳤을때 굉장히 부드러워져 있기도 하고. 복잡한 코딩을 하다가 치면 더 잘 쳐지는 것 같은 느낌도.

아무튼 올해는 언니 덕에 고민도 없이 예쁜 곡을 기분 좋게 연습했다.

실력이 실력이다보니 좋은 곡도 치다 보면 지치는 법인데 칠 때마다 몇 마디 이상은 꼭 이쁘다고 느낄 수 있었던 곡.

 

드로잉수업 준비물. 끝날때는 해가 짧아져 한 밤중에 집으로 오는 기분이었지만 시작할땐 이렇게 부채까지 챙겨가야 했다.

 

바닐라빛과 살구빛 그림자의 계절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떠났던, 올해 마지막 캠핑.

 

물주머니 하나만 믿고 갔던.

 

해가 슬슬 짧아질때 낮에도 한 번씩 켜 보는 초.   눈은 침침해도 마음만은 든든하라고.

 

 

올 가을엔 어느때보다도 더 많이 걸었다. 저녁무렵 금박지처럼 빛나는 돌길을 실눈을 뜨고.

 

 

 

파리 갈 때마다 사고 싶었던 스쿠터, 차에 싣고 다니며 시내 관광할때 쓰고 싶었는데

실제로 타보니 강변따라 조금만 달려도 허벅지가 불타는 것 같았다. 가끔 마인 강변이나 달리는 걸로...

 

독일의 일요일 문화는 진짜, 조용히. 그냥. 쉬기.인 듯. 레스토랑은 열지만 쇼핑은 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이 부분에 적응을 못했다.

그래서 일요일엔, 채소나 과일도 살 수 있고 인테리어 용품도 구경할 수 있는 외곽의 큰 화원이 오아시스.

'화원 -> 맥도날드 -> 가로수길'의 루트를 따라 최종 목적지는 늘 이 곳 놀이터. 항상 한적하고 아이들의 흔적조차 없는 '버려진' 꿀 동산.

 

폴리시아스 산 날.

 

예전 살던 동네에 가끔 간다. 옛날 얘기 하면서 늙은이들처럼 관조적 눈으로 보는 풍경들. :-|

시간도 빨리 가고 세상도 빨리 변하고 ... 찬수 이마도 빠르게 넓어져 간다. :'-|

궁금하다, 이 속도는 어디까지 빨라지는걸까... 이미 올해는 한... 서너달의 느낌으로 흘러가 버렸는데 얼마나 더..?

 

드로잉 수업 막바지에는 해가 짧아져서 야간학교를 다니는 기분이었다. 찬수가 빠지지 말고 잘 다니라고 차로 데리러 와 준 덕에 무사히 개근했다.

집에 오는 길, 마인 강변에 차를 세우고 관광객들을 구경하며 찬바람 혀로 마시며 개처럼 탈탈탈 걷다가 돌아오곤 했던, 좋은 가을밤들.

 

차 사고 첫 휴가. 정감 넘치라고, 엑셀이 아닌 종이에 써 내려간 너의 여행 계획.

 

올해 본 넷플릭스 드라마 중 최고는 윤경이 추천으로 본 travelers. 다 본 후에 찬수랑 같이 보고 싶어 다운받아 한 번씩 더 봤다.

그 중에서도 뭔가 좋아서 보고 또 본 에피소드. 친근하게 'programers'들이 나오고 :-D, 따뜻한 '채식' 저녁식사 장면도 나오고...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지금 누리는 자연이 아직은 얼마나 아름다운 지 생각하게 돼서 좋다. 

'welcome to the 21st' 라는 인사를 받은 트래블러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경이,감탄한다. 매번, 정말 매번... 나도 그 눈으로 세상을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채식까지는 못하겠지만.

 

다행히도 요리가 취미인 찬수. 다행히도 요리실력이 나날이 늘어가는 찬수.

다행히도 내가 "먹고먹고또먹어도 또 잘 먹는" 사람이어서 요리할 맛이 난다는 찬수. :-|

 

한식엔 '엄마손'이지만 베이킹엔 늘 초보. :-| 이층 케잌을 기대하면 팬케잌을 만들어 줄줄 흘러내리는 생크림을 뿌려 준다.

그래도 난 언제나 접시에 뭍은 생크림까지 개처럼 쏴악쏴악 핥아먹어준다.

찬수가 칭찬처럼 늘 흐뭇한 얼굴로 하는 말, '훌륭한 요리사 뒤엔 훌륭한 먹보가 있어'  :-|

 

독일에 온 후로 바다가... 송지호가, 안면도가, 을왕리가 너무 그리웠다.

송지호는 아니지만, 횟집 즐비한 안면도는 아니지만,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해안가에서 달랜 그리움, 한움큼 주어온 조개와 돌멩이들. 

 

요새는 그러더라, sitting is smoking. 이라고.

젊을때야 그런 소리 들어도 흥, 했겠지만... 이제 앉아서 계속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높낮이 조절되는 책상으로 바꾸고 배치도 바꿨다.

가끔 서서 코딩한다. 마트 계산대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이상한-조바심나는 기분을 추진력 삼아 :-|

 

해가 짧아지니까 찬수 퇴근하고 같이 뒹굴거릴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기분. ㅠㅠ

 

초 켜고 차 마시는 분위기로... 이겨내기엔 아직 역부족인 독일의 겨울 ㅋ

 

 

겨울이 다가올 수록 바람도 거세진다. 처마에 매 놓은 등이 미친듯이 돌아가던 밤.

 

12월까지는 낭만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밤들.

1,2월의 고비를 잘 넘기게 해 주세요 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