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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things are not so little

Camping #2

지도의 코스대로 이끄는 찬수를 따라 가다가 작은 샛길로 빠졌는데 급히 턴해 들어간 이 곳에는 절벽 앞에 앉아 쉴 수 있는 바위들이 포개져 있었다. 

푸른 들 위로 이어지는 길로부터의 시선에서 조금 단절된 느낌이 드는 이 곳은 건너편의 이 초코케잌같은 산과 이 편의 산 사이로 협곡풍이 물처럼 흘러와 바위 위로 부딪혀 오르고 있었다.

여기 앉아 바위 위에 녹아 있는 따뜻한 볕을 받으면서 한편으로 굽이치는 차가운 바람에 몸의 열기가 씻겨 내리도록 했다.

이 여정에서 제일 좋았던 곳

 

누군가가 꽃을꺾었다. 누군가가. 내가 그랬다면 한 송이를 채 꺾기도 전에 찬수한테 엄청난 훈계를 들어야 했겠지만... 두서너 발치에서 누군가의 이 '못된 짓'을 기꺼이 즐겼다.  :-|

 

 

이렇게 우리의 두번째 캠핑은 이 곳 스위스의 작은 캠핑장에서.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안내부스 근처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있을때 주인인듯 보이는 아저씨가 다가와 지도와 안내책자를 챙겨주며 어느 코스가 좋은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아저씨가 실시간 영상을 보여주며 추천해 주신 덕분에 캠핑장에서 애초에 계획했던 곳보다 더 저렴하고 붐비지 않는다는 코스로 트레킹을 할 수 있었다.

 

캠핑장에 텐트를 치고 샤워를 하고 돌아와 찬수는 내가 말아온 김밥을 먹고, 나는  찬수가 만들어온 자장에 밥을 비벼먹었다.

 

희끗희끗 눈이 박힌 산 아래서 나는 책을 읽고, 찬수는 아저씨가 주신 이런 저런 코스의 할인티켓을 가지고 어딜 가야할 지 끝까지 다시 고민했다.

 

잠자리가 바뀌어 불면증이 되살아날까봐 봄에 의사선생님이 추천해주신 티를 아주 진하게 우려 먹어야했다. :-|

이웃은 스페인에서 온 나이든 부부였는데 저녁식사를 한 후 누군가와 다정한 목소리로 통화하는 것이 들렸다,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자식들과의 통화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꽤 여러군데를 돌아다닌 듯 했고 성격도 굉장히 활달-다감해서 찬수가 사이트를 칠 때 와서 이것저것 도와주셨다.

으리으리한 캠핑카와 장비들을 가지고 다니는 독일의 노년 캠퍼들에 비해 소박한 장비들이었지만 표정도 부부사이도 이 캠핑장에서 제일 살뜰해 보였다. 

이 분들이 밤에 노래를 불러댔는데 피곤했는지 나는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그냥 잠이 들어 아침까지 곤히 잤다.

 

캠핑의 가장 좋은 순간은 아침.

맑은 공기에서 좋은 것만 먹자며 고집을 부려 산 비오 컵 스파게티, 고르면서도 사실 속으로 얼마나 맛이 없을 지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찬수도 나도 맛있게 후루룩 먹어 치웠다. 

정말 먹어야 할 순간에, 정당한/적당한 '허기'를 느끼며 같이 나눠먹는 음식은 그것 자체로 절대적인 맛과 만족을 준다는 걸.. 잊지 않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8년된 내 오랜 신발, 짐을 싸면서 신을 뒤집어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신 신고 돌산, 눈산 여기저기 많이 다녔고 심지어 늦은 나이에 도전한 면허 시험도 내 넙적한 발에 착 감기는 이 신에 의지해 연습했는데 드디어 이번 트레킹 후 바닥에 금이 가고 말았다.

몇 십년을 더 신어도 멀쩡할 것 같은 신이었는데..., 세상에 내 짧은 삶 안에서도 내 손에 내 발에 내 몸에 영원한 물건이 없네.

조만간 이 신도 사진과 기억으로만 남겠구나 싶다. 아직 십년도 안 됐는데... 어쩌면 금 간 채로 조금 더 신어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