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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things are not so little

spring is here


Spring is here - Bill Evans




빌 에반스를, 찬수 먼저 출국하고 혼자 남았던 날들의 잠드는 머리맡에 자주 틀어두곤 했다, 

찬수 베개에 기대 놓은 아이패드의 어두운 화면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그의 허옇고 큰 손, 반짝이는 안경테가 보드라운 피아노 음색과 어울려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지금도 빌 에반스를 듣고 있자면 그때의 노란 램프 빛이나 이불 위로 펼쳐 놓았던 종이 위 낙서들, 큰 머그컵의 우유에서 나던 옅은 향 같은 것들이 떠오르곤 한다.

waltz for debby가 시작될 때 트리오 전체의 모습에서 피아노로 줌인해 들어가는 영상을 바라보며 외롭다기 보다는 따뜻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의 빌 에반스를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운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해 주는 그의 음악이기때문에 감사하고, 또 그런 이유로 그의 피아노가 그때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그 따뜻함에 집착하다 보면, 글이나 사진, 그림같은 것들로 기록해둘 수 없는 이 미묘하고 연약한 기억의 덩어리들을 조금씩 잃어가야 한다는 게 슬프기도 하다.

그런 기억들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끈 중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게 음악이고 

무엇보다 강력하지만 내가 핸들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공기의 냄새, 무엇인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 속의 어느 특정 순간에 고착된 시간 고유의 냄새,

그리고 찰나의 빛, 역시 계절이 순환하는 가운데 반복되는 미묘하고 놓치기 쉬운 빛의 순간들...

오늘 오랜만에 해가 떴는데 커튼에 비스듬히 바닐라빛으로 기대오는 빛을 보다가 네덜란드에 머물렀던 호텔방의 넓은 창이 생각났고 

그때 그림그리며 자주 들었던 음악들이 생각났다. 빌 에반스 뿐 아니라 그 전에는 잘 듣지 않던 인디 밴드 음악들도 한참 듣곤 했었던..

벌써 몇 해 전으로 밀려나버린 그때의 봄을 기억한다.

오늘의 봄도 언젠가 또 지금 듣는 음악들로 기억하겠지 싶어서 하던 일 멈추고 커피 들고 소파에 깊이 앉아서 잠깐 음악만 집중해 들었다. 

이럴땐 음악에 메시지 새기는 기분인 거다. 

'미래의 윤수에게, 기억해... 유연해지려고, 부드러워지려고 나름대로 -여전히- 고군분투중인 지금의 나를' :-|